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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대표 제국,로마의 탄생과 정치, 분열과 멸망

by 쪼옹드림 2023. 5. 16.

<완자 세계사>, 57p

이포스팅은 <고대 통일 제국의 등장 2 한눈에 세계사>, 로마 편을 참조로 로마의 탄생과 건국신화, 로마 정치 그리고 분열과 멸망의 주요 흐름만 잡아 정리하였다.

 

로마의 탄생과 건국 신화

이탈리아에도 새로운 나라 로마가 기원전 12세기 라틴족이 등장하면서 굳건한 나라로 명맥을 이어왔다. 로마는 에트루리아늬 문화를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농사 기술을 바탕으로 농경지를 개척하며 조용히 강력한 도시 국가로 성장했다. 로마는 늑대와 관련된 건국 신화가 있다. 아이네이아스 트로이 장군은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패한 뒤 가족들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과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난다. 이탈리아의 테베레강에 도착해 라비니움이라는 도시를 세운다. 이후 13대 후손 때에 분열이 일어났다. 왕의 두 아들의 다툼으로 딸 무녀만 남기고 동생이 형의 자손 모두를 죽였다. 전쟁 신 마르스가 딸레아 실비아를 사랑하여 쌍둥이  아들을 낳자 왕은 딸의 아이들을 강물에 버리라고 명령했다. 마음 약한 시종이 바구니에 실어 보낸 쌍둥이를 강을 지나던 늑대가 발견하여 새끼처럼 젖을 먹여 키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양치기에 발견된 쌍둥이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성인이 되어 외할아버지의 원수인 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그중 형 로물루스가 왕위를 차지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로마라고 이름을 붙였다.

 

로마의 정치,민주정 vs 공화정

로마도 처음엔 왕이 다스렸지만 로마의 귀족과 평민들은 에트루리아 출신의 왕을 몰아낸다. 왕을 몰아낸 귀족들은 원로원과 집정관 두 명을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잦은 전투로 힘들어진 평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기원전 494년에 로마 동북쪽 성산으로 떠나버렸다. 평민이 없으면 전투를 치를 병사가 없게 되니 로마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평민들과 평등하게 나누기로 합의한다. 시미민대표가 정치에 참여하는 공화정 시대가 열린 것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민주정은 모든 시민이 토론과 투표에 참여하여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제도이다. 공화정 시기에 민회, 정무관, 원로회는 로마를 지탱하는 세 개의 기둥이다. 공화정은 세습 군주나 선거로 뽑힌 군주가 아닌 사람들이 뽑은 개인이나 집단이 통치하는 제도이다. 평민 대표 '호민관'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형식적으로나마 평민들에게도 최고 권력을 주었다.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포에니 전쟁

로마는 에트루리아 출신의 왕을 몰아내고 이탈리아반도의 통일을 시작으로 기원전 272년에는 이탈리아 반도 남은 타란토까지 정복하면서 이탈리아를 통일했다. 시칠리아 섬에 있던 카르타고가 로마 편인 메시나를 공격하면서 사건이 일어난다. 마침 로마는 지중해 무역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264년부터 14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지중해 지배력을 확립하게 된 중요한 전쟁이었다. 첫 번째 포에니 전쟁(264-241 BC)에서는 로마가 시리아 지방에서의 카르타고의 영토를 침입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다. 로마가 이긴 후 카르타고는 대대적인 복수를 두려워해 로마의 조건에 따라 전쟁을 종료하게 되었다. 두 번째 포에니 전쟁(218-201 BC) 카르타고가 이전 전쟁에서 실패한 복수를 위해 로마와 싸웠다. 카르타고는 이베리아 반도의 영토를 넘겨줄 뿐만 아니라 해외 영토를 모두 잃고 전쟁 피해 보상금을 갚아야 했다. 세 번째 포에니 전쟁(149-146 BC)에서는 카르타고의 이웃 나라 누디미아가 카르타고에 쳐들어와 로마의 허락 없이 군대를 움직였다는 명목으로 다시 로마에 의해 카르타고는 전면 파멸하였다. 이후에는 로마의 지중해 지배력이 확립되고, 이로 인해 지중해 지역의 경제적, 정치적 교류가 활성화되었다. 로마 공화정은 약 500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지속되는 동안 로마는 지중해 지역에서의 권력을 강화했고,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쇠퇴는 공화정 후기에 시작되었다. 공화정 후기에는 부의 집중화와 전쟁으로 인해 토지 분배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여 지역 간 갈등이 심화되었다. 로마 군대는 전쟁 후 이를 보장하지 못하면 군인들은 불만을 표출하고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여러 정치적, 군사적 반란과 함께, 유력한 개인인 줄리어스 카이사르의 출현은 공화정의 붕괴와 로마 제국을 탄생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분열과 멸망

오현제 시대부터 차츰 정복 전쟁이 준다. 나라 곳곳은 여전히 반란으로 5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황제가 무려 스물여섯 번이나 바뀌었다. 284년,이탈리아의 천민으로 하급 병사에서 시작하여 로마의 황제가 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 제국을 두 명의 황제와 두 명의 부황제로 나누어 통치한 첫 번째 황제이다. 동방 제국과 서방 제국으로 나누고 황제 호칭 대신 '정제'와 부황제인 '부제'를 두었다. 내전으로 혼란스럽던 로마를 다시 통일하였지만 크리스트교를 심하게 박해하여 좋은 형가는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 로마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집권 시기에 다시 다시 통일 국가가 되었다. 그는 크리스트교를 인정해 주어 분열되어 가는 로마 제국을 종교를 이용해 하나로 통일하려 했다. 하지만 로마는 계속 기울어갈 뿐 북쪽에서 밀려오는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제국의 멸망을 재촉했다. 로마 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게르만족을 용병으로 쓰고 있었는데, 그들들은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동로마 제국은 천여 년 동안 동유럽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오다 1453년 오스만 뒤르크족이 세운 이슬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에 정복당하여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