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화석 발굴 <한눈의 세계사 1>,14p
세계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책을 참조하여 세계 이해를 바탕으로 개인적으로 책을 요약하고 정리하였다. 인류의 기원과 문명의 시작, 수메르 문명의 발달 시작점에서 중요했던 기록과 기호체계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 매우 뿌듯하다. 참조한 책은 <한눈에 세계사 1>, <완자 세계사>, <세계사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이다.
인류의 기원
지구의 역사와 생명의 시작은 언제부터 일까? 오늘날은 과학의 발전이 생명의 시작과 인류의 기원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설명하지만 오래전에는 이러한 궁금증을 풀 수 없어 많은 신화와 종교에서 답을 찾았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대략 46억 년 전 지구가 생겨나고, 생명체가 살기 시작한 것은 약 41억 년 전이라고 한다. 가장 오래된 생명체의 흔적은 오스트레일리아 화석에서 발견된 박테리아 화석이다. 이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이견이 갈리지만 약 10억 년 전쯤에 단세포에서 다세로 생물이 나타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오랜 시간을 거쳐 진화를 거쳐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 위 조상은 어떻게 등장하였을까? 박테리아 진화를 거듭하면서 녹색 식물이 되었다. 이 식물이 산소를 만들어 지구에 동물이 나타날 수 있었다. 약 6~7억 년 전으로 보이는 화석들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견 됐는데 대부분이 무척추동물, 암모나이트다. 5억 8000만 년 전에는 삼엽충, 갑주어, 완족류의 동물이 등장한 후 고사리 등의 양치식물도 탄생 번성한다. 그런데 약 6600만 년 전, 공룡이 완전히 멸종하고 최초의 인류라 할 수 있는 오스트랄로푸테쿠스가 나타난다. 인류가 '문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 바로 직립 보행 덕분이다. 이에 따라 인간의 머리는 몸 위에서 지탱할 수 있었고 목구멍과 입안의 공간이 넓어졌고, 다양한 소리를 내면서 언어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후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후대에 전달할 수 있었다. 인류의 출현관 진화는 다음 표로 대신한다.
-완자. 세계사 2009 개정교육과정 참조-
우리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은 호모 사비엔스다. '지혜로운 사람', 오늘날 '현생인류'라고 한다. 이들은 도구를 더욱 발달시켜 화려한 동굴 벽화도 그렸다. 또한 세계의 기호와 풍토에 맞게 진화하여 다양한 인종으로 분화했다. 대표적인 동굴벽화로는 라스코 동굴벽화와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있다. 먼저 라스고 동굴벽화는 1940년 프랑스 베제르 계곡에서 기원전 3만 5000년~기원전 1만 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로 마을 소년들이 우연히 발견하였다. 오늘날에 그려진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세밀함과 풍부한 색감으로 정도이다. 짐작컨대 신성한 곳으로 추정 대며 사냥의 성공과 풍요를 기원했을 것이다. 두 번째 알타미라 동굴 벽과는 그로마뇽인이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1879년 스파냐 귀족 사우투 올라가 동굴 탐사에 나서 그의 딸이 천장에 그려진 벽화를 발견했다. 후기 구석기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매머드, 들소, 사슴의 생생한 모습이다.
문명의 시작
문명의 사전적 의미는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상대하여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를 뜻한다.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을 말한다. 먼저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시대인 선사 시대에는 그들이 남긴 유물과 유적으로
당시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 재료에 따라 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로 구분하는데, 이 도구의 발달이 역사의 발달을 이루었다. 오랜 시간 지금까지 남아 있는 돌의 모양과 형태에 따라 구분하여 구석기에는 돌을 떼어낸 '뗀석기'가 신석기에는 돌을 갈아서 만들어낸 '간석기'로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다. 신석기에는 대개 1만 년 전으로 보는데 도구의 변화뿐 아니라 엄청난 기후 변화를 격었다. 오랜가 뭄과 엄청난 폭우로 기후는 변화무쌍했다.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100미터 이상 높아지며 낮은 지대에 물이 잠기고 인류의 이동은 차단된다. 차츰 기온의 상승과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인류의 삶이 획기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에 따라 세계 곳곳에 홍수와 관련한 신화가 생겨난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대홍수와 방주에 관한 이야기,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구석기 이후 위험에 노출되는 사냥과 채집보다는 더 생존에 유리한 곡식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면서 무리 지어 생활하기 시작했다. 점차 농사의 비중이 커지면서 산 아래에 장착하며 가축을 기르면서 무리지어 생활하기 시작했다. 점차 농사의 비중이 커지면서 산 아래에 장착하며 가축을 기르고 말이나 낙타로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삶을 더욱 풍요롭게 변화시킬 수 있었던 이때를 '신석기 혁명'이라고 한다. 안정된 정착 생활은 인구의 증가를 가져와 마을은 점점 커져 혈연 중심의 씨족 사회에서 부족 사회가 되었다. 신석기시대는 모성 위주의 사회지만 힘센 남성이 농사일을 주도하면서 서서히 남성의 지위가 올라간다. 각 부족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신앙과 문화를 가지고 풍습과 문화가 다양해졌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에는 여전히 생산과 분배가 공동으로 이루어진 평등한 사회였다. 그러다가 청동기 시대에 사유 재산과 계급이 분화된다. 부족들 간의 분쟁이 잦아 그 과정에서 권력자도 생겼다. 권력자들은 힘을 다스리는 권위를 만들어 고인돌이나 거석 기념물을 세우면서 힘과 권위를 상징하기도 했다. 부족을 지키는 신을 숭배하고 종교를 탄생시킨 것도 이러한 일환이다. 거대 건축물은 문명의 발달을 이끌었지만 평등한 인간관계는 사라지게 되었다. 지배 계급들이 더 많은 노예를 가질수록 생산물이 늘어나 생활도 윤택해지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부족 사회가 이제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신분을 나뉜 초기 국가의 모습을 띄게 된다. 초기 국가의 지배자는 신의 힘을 빌려 권위를 유지하고 정치적 지배력으로 힘과 정보, 기술을 독점한다. 이 집중된 자본과 기술, 노동력이 도시의 발전을 가져왔다. 도시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새로운 직업이 나타나는데, 물건을 만드는 장인과 그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의 물자의 교역도 활발해졌다.
최초의 문명, 고대 도시 수메르 문명
--<한눈에 세계사-인류의 탄생과 고대문명>, 26P.
가장 오래된 문명은 고대 도시 수메르 문명이다. 이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일어났다. 인류 최초의 고등 문명을 창조한 수메르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위치한다. 이 문명은 인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최대 5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산 이 도시에 댐을 설치하여 홍수에 대비하고 운하를 건설해 농경지에 기억하기 위한 방식을 간단한 그림들 이후에 점차 기호 체계를 만들어 사용했다. 무른 점토판에 못으로 기호를 새겨 이 점토판을 불에 구워 오래 유지하도록 했다. 무른 점토판에 못으로 기호를 새겨 이 점토판을 불에 구워 오래 유지하도록 했다. 이것이 후대에 지식을 전하는 길이 되었다. 이른바 '설형문자'의 발명이 역사의 진보를 가져온 것이다. 도량형 체계가 이때 고안되었으며 시간 단위도 이체계가 이때 고안되었으며 시간 단위도 이 체계에서 유래한 것이다. 도시를 통치하는 군주가 자신이 신들과 가까운 존재라는 데서 통치권의 근거를 찾아 지배하였다. 이들은 다신교를 믿고 도시 군주는 규율을 만들어 법률을 공포하였다. 사람들은 공남을 통해 사제단과 관리에게 안정된 물자를 공급하고 군대와 인력으로 동원되면서 이 문명화된 공동생활은 발전해 갔다. 수메르인들이 현대적인 특징을 보이는 것은 도시 국가들의 분쟁에 소유권, 특히 소지 소유권 분쟁과 권력의 문제에 있다. 대략 1500년 간 전성기를 구가해(여러 사람이 입을 모아 칭송하여 노래하다) 기원전 2000년경에 대부분의 중동 지역에 퍼져 있었는데, 이후 인류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 이유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의 유품은 계속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