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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제국, 페르시아 태동과 번영

by 쪼옹드림 2023. 5. 12.

고대 통일 제국의 등장

 

이포스팅은 고대제국 페르시아의 태동과 번영 속에서 동서양의 격돌, 페르시아 전쟁 그 제국의 분열을 통해 인류역사의 흐름을 통찰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고대 제국 페르시아의 태동

역사 시대 구분의 하나로, 원시 시대와 중세 사이의 시대. 서양은 그리스 때부터 게르만족의 대이동 때까지를 이른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 때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 중국은 한나라 때부터 당나라 때까지)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큰 사회를 만들어간다. 현재 이란 땅이 있는 서아시아에 페르시아 제국이 있다. 당시 도시 국가인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번성하던 그리스도 떨게 만든 강한 군사력과 힘을 갖은 나라다. 아시아의 서쪽 지역, 서아시아는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유럽 대륙과 연결되어 있다. 이때 가장 강력한 힘은 갖은 나라, 히타이트는 기원전 2000년 무렵 서아시아에서 일어난 인도, 유럽 어족에 속하는 고대 시리아 민족이다. 히타이트는 '철'을 가지고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어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 무렵 수메르어나 아카드어가 아닌 아시리아어를 쓰는 새로운 민족이 터를 잡기 시작한다. 아시리아는 자신들의 문화를 발전해 자연스럽게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퍼뜨렸다. 이집트는 서아시아 강대국인 히타이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는데 이두 나라 모두 시리아 지역을 차지하고 싶었다. 전쟁으로 무승부에 이르러 두 나라는 동맹을 맺어 서로 보호하기로 협약한 인류 최초의 조약이 하투샤에서 발견되었다. 기원전 1200년 무렵은 해상 민족의 습격으로 서아시아 국가들은 위태로워진다. 이 오랜 암흑시대가 지나 기원전 1000년쯤에 신아시리아라 불리우는 전차 기병 부대가 기원전 700년 무렵 지중해 동해안 지역과 이집트까지 넓은 땅을 통일하였다. 신바빌로니아에 멸망하고 말지만 이 왕국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 멸망한다. 이 페르시아는 서양에서 '이란 민족'을 뜻하는 말이다. 주변국을 차례로 정복한 땅이라도 그 민족만의 언어와 종교를 인정해 주면서 정복지의 민족들의 미움을  받지 않고 오랫동안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페르시아의 번영을 이끈 다리우스 1세

키루스  2세의 사위인 다리우스 1세는 캄바세스 2세가 죽자 페르시아 왕위에 올랐다. 그는 조로아스터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여 유일신인 아후라 마즈다의 계시로 사악한 사제들을 물리치고 자신이 왕이 된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때 페르시아는 전성기를 맞는다. 또한 다른 민족의 문화를 존중한 정책은 다른 제국이 100년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진 것에 비해 페르시아가 200년이나 이어 갈 수 있는 이유였다. 

24p. 조로아스터교는 기원전 6세기 무렵때부터 페르시아의 예언자가 만든 종교로 선한 신, 아후라마즈다와 악한 신, 아리아만과의 대립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 이전의 종교는 다신교였는데 점차 유일 신앙으로 정착한 조로아스터교는 당시 개혁적인 종교였다. 이 유일신 사상이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유대교에 영향을 주었다.

 

페르시아 전쟁과 분열

서아시아를 점령한 다리우스 1세 유럽 쪽으로 영토를 확장할 계획으로 바로 옆의 마케도니아 지방을 먼저 공격한다. 이 후 이오니아의 도시를 진압하고 바로 아테네를 정복하려 한다. 아테네의 지원받고 있던 이오니아의 반란을 계기로 전쟁을 선포해 다리우스 1세는 기원전 492년에 이어 다시 기원전 490년에 아테네 원정길에 오른다. 20만 명의 군사를 이끈 페르시아는 1만 명도 안 되는 아테네 군대에 지게 된다. 두 번째 원정까지 실패로 다리우스 1세는 세상을 떠나고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가 10년간 함대를 구축해 병사를 키워 마침내 기원전 480년, 세 번째 아테네 정복길에 오른다. 그리스 연합군은 아테네를 돕기로 하고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이 페르시아 군대를 맞아 300명의 정예군은 장렬히 전사했다. 페르시아의 3차 원정은 그렇게 아테네 도시로 입성했다. 페르시아 군대는 살라미스섬으로 도망간 아테네 군대를 쫒다 살라미스섬으로 도망간 아테네 군대를 쫓다 살라미스섬의 앞바다의 빠른 물살에 빨려 좌초되 그 많던 배들은 전멸하였다. 이 싸움은 아테네의 승리였다. 31p. 크세르크세스 1세는 후궁들의 암투로 인해 암살당하고 만다. 이후 페르시아 왕조는 키루스 2세와 다르게 정복한 도시에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는 등으로 시민들을 탄압해 반란과 내분이 끊이질 않았다. 이에 마지막 황제는 다리우스 3세는 환관 바고아스에 의해 왕과 왕자들은 살해당한다. 이때 약해짐 틈을 타 들어온 알렉산드로스의 군대에게 속수무책당하게 된다. 그리스 동맹군을 이끌고 있던 알렉산드로스는 평화 협정을 맺겠다는 다리우스 3세의 청을 거절하고 기원전 331년 레르시아와 가우가멜라 평원에서 전투를 치른다. 이수스 전투에 이어 패한 페르시아제국은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